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퐁파두르 부인 (문단 편집) == 업적 == [[로코코]] 전기부터 중기까지의 화려한 전성기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복식인 로브 아 라 프랑세즈는 [[루이 16세]] 시대까지 프랑스 궁정의 공식 예복이었고 마담 드 퐁파두르는 당대 유행을 좌지우지하였다. 퐁파두르 부인은 모든 것을 [[루이 15세]]에게 바친 사람이었다. 까다로운 성격의 그에게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였다. 궁정 안에 조립식 무대를 만들어 왕의 측근들이 나오는 몰리에르의 희극과 륄리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는데, 가까운 사람들과 친밀한 루이 15세에게 이건 흥미로운 이벤트였다. [[사냥]]을 좋아하는 왕을 위해 [[프랑스 파리|파리]] 근교의 성을 사서 새로 장식해 보이기도 했는데, 직접 대공사를 할 뱃심은 없었지만 설계 도면을 보는 걸 좋아하는 왕이라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소일거리를 주었다. 처음에는 왕을 기쁘게 하려던 것이었는데 계속 성을 개축한 덕분에 프랑스 장식[[미술사]]에 이름을 남겼다. 자기 집이라고 부를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장식한 벨뷔 성이 대표적인 예다. 이 벨뷔 성의 벽화는 당대 최고의 화가인 부셰가, 식당 벽은 사냥 그림으로 유명한 장-바티스트 우드리가 담당했다. 전체 리모델링의 감독을 맡은 사람은 루이 15세의 초상화를 그린 왕실 화가 샤를 반 루였고, 정원은 18세기 대표적인 조각가 피갈과 에티엔 팔코네의 조각으로 장식했다. 당대 예술가를 총동원한 공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벨뷔 성은 [[프랑스 혁명]] 때 "반동분자의 악습을 상징한다"는 이유로 철거되었다. 퐁파두르 스타일은 여성적이고 섬세하며 전원적인 느낌을 자아내는데, 대표적인 것이 '프렌치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파스텔 색조의 랑브리다. 민트색과 [[병아리]]색 등 흰색이 섞인 파스텔 토느이 랑브리는 공간에 온기와 생기를 주지만, 당시에는 [[페인트]]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죄다 퇴색되어 버렸다. 가구 또한 파스텔 색상을 선호해 금칠한 의자는 위압감을 주지만 퐁파두르 색을 칠한 의자는 소박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자아내고, 이 스타일은 [[마리 앙투아네트]]로 이어진다. 나무에 색을 칠하는 레샹피라는 기술은 돼지 털로 만든 둥근 붓을 일컬었다. 가구 표면처럼 조각과 곡선이 많은 부분을 섬세하게 칠해 가구에 색을 칠하는 기술로 불리게 된다. 레샹피 기법으로 칠한 가구들은 오래 보존하기가 어려워 보기 드물다. 현재의 콩코드 광장을 건설하고 프랑스 사관학교를 후원한 적도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설립자를 후원한 쪽인데, 그의 돈줄이 어디에서 나왔나 생각하면 업적이라고 하긴 뭣하다. 사관학교 개혁도 [[루이 15세]]가 [[7년 전쟁]]에서 프랑스군의 추태에 충격을 받아, 평소 국사에는 무관심했던 그가 귀족들의 반발을 물리치고 끝까지 강행한 거의 몇 안되는 업적이었다. 색채 감각이 뛰어난 퐁파두르가 가꾼 성들은 파스텔 색조의 랑브리로 유명했다. 여기에 어울리는 여성스러운 가구들을 직접 스케치할 만큼 인테리어에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이런 곳은 대부분 철거되어 베르사유 궁정의 퐁파두르의 방에만 간신히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시도는 새로운 발명을 낳기도 했는데, 루이 15세를 놀라게 해줄 생각으로 한 무더기의 가짜 꽃다발을 만들어 주었다. 이 꽃다발은 뱅센 왕실도자기 제조장에서 만든 도자기 꽃으로 왕실 도자기 제조장을 후원하던 퐁파두르가 제조장을 자기 벨뷔 성 근처로 옮겨 세브르 왕실도자기 제조장을 세웠다. [[영국]]이나 [[독일]], [[중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한 [[도자기]]가 대세이던 시절, 퐁파두르의 후원 덕분에 세브르 왕실도자기 제조장은 유럽에서 명성을 떨치는 도자기 제조장이 된다. 이 시대 세브르 도자기의 대표 스타일은 퐁파두르 컬러라는 이름이 붙은 파스텔 핑크와 파스텔 민트색을 바탕으로 우아한 꽃 문양과 섬세한 장식 문양이 돋보이는 여성스러운 도자기다. 퐁파두르는 도자기를 좋아하여 세브르 도자기 외에도 중국과 일본 도자기를 컬렉션으로 모았다. 그렇다고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 대부분 이렇게 이야기하면 퐁파두르 부인이 왕을 치마폭에 휘어잡았다고 생각하고 실제 [[앙시앵 레짐]] 시대의 선전물은 그렇게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정부]]는 엄연히 정부였다. 왕의 정부가 되어서 부귀영화 누린 거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글쎄... 이미 왕의 공식 정부 자리 자체는 원래가 비공식적인 데다가 워낙 말이 많은 자리고 보장이 되지 않는 자리기도 했다. 고소득, 고위험의 비정규직이라고 이해한다면 쉬울 것이다. 왕이 정신적으로 약해져서 의논 상대는 될 수 있을지언정 실제 정치에 간섭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적었다. 실제로 모든 판단은 [[루이 15세]]가 담당했으며, 그녀는 처음 만나는 사람을 불편해 했던 왕의 [[비서]] 역할, 대화를 부드럽게 이끌 수 있는 도우미 정도로 일해야 했다. 다만 왕이 하루에 만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테니 그 정도 일이어도 굉장히 많은 업무를 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